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북부에서 성장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이로써 한반도에 국가 형태의 정치 체제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기원전 194년 중국 연나라에서 이주해 온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아 위만조선을 세웠다. 위만조선은 철기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중계 무역으로 세력을 키웠으며,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가 되었다.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 그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낙랑군·임둔군·현도군·진번군의 네 군현을 두었다. 이를 한사군이라 하며, 이후 우리 민족의 저항 속에서 점차 세력이 약해졌다.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경주 지역의 사로국을 바탕으로 신라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신라는 진한의 작은 소국에서 출발하여 뒷날 삼국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기원전 37년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이 졸본 지역에 고구려를 세웠다. 고구려는 이후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세력을 넓히며 삼국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기원전 18년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가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백제를 세웠다. 백제는 마한의 소국에서 출발하여 삼국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197년 고구려 제9대 왕인 고국천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재위 중 을파소를 등용하고 진대법을 실시하여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346년 근초고왕이 백제의 제13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마한 세력을 통합하고 371년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391년 광개토대왕이 고구려의 제19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쳐 만주와 한강 이북까지 영토를 크게 넓히며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었다.
427년 장수왕이 고구려의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다. 이는 남진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이후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며 한강 유역으로 세력을 넓혔다.
540년 진흥왕이 신라의 제24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대가야를 병합하였으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정비하여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612년 수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자, 을지문덕이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후퇴하는 수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이 살수 대첩으로 고구려는 수의 침입을 막아 냈다.
632년 선덕여왕이 신라의 제27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첨성대를 세우고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는 등 불교 문화를 크게 일으켰다.
645년부터 668년까지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고구려는 안시성 싸움 등에서 당의 대규모 침입을 여러 차례 물리쳤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점차 약해졌다.
660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 사비성을 함락하였다. 계백이 이끄는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맞섰으나 패하였고, 의자왕이 항복하면서 백제는 멸망하였다.
668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진 데다 연개소문 사후 지배층의 내분까지 겹치면서 고구려는 멸망하였다.
670년부터 676년까지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신라는 매소성·기벌포 싸움에서 당을 물리치고 대동강 이남에서 당의 세력을 몰아내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 지역에서 발해를 세웠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내세웠으며, 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이루었다.
828년 장보고가 흥덕왕의 허락을 받아 지금의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은 해적을 소탕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 무역을 장악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신라 말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지방에서 호족들이 일어났다. 900년 견후이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우면서 신라와 함께 세 나라가 대립하는 후삼국 시대가 전개되었다.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으며, 이듬해 송악(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후 935년 신라의 항복을 받고 936년 후백제를 무너뜨려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949년 광종이 고려의 제4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실시하고 공신·호족 세력을 억눌러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 집권 체제를 다졌다.
고려는 993년, 1010년, 1018년 세 차례에 걸쳐 거란(요)의 침입을 받았다. 1차 침입 때는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고, 거듭된 침입에도 고려는 이를 끝내 막아 냈다.
1019년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침입한 거란군을 귀주에서 크게 무찔렀다. 이 귀주 대첩으로 거란의 침입은 마무리되었고, 고려는 이후 동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1170년 정중부·이의방 등 무신들이 문신에 대한 차별과 머시에 불만을 품고 정변을 일으켰다. 이들은 많은 문신을 제거하고 의종을 몰아낸 뒤 권력을 장악하여, 이후 약 100년간 무신 정권이 이어졌다.
13세기 몹골이 여러 차례 고려를 침입하였다.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끕질기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강화를 맺어 원의 간섭을 받게 되었으며, 삼별초는 이에 반발하여 항쟁을 이어 갔다.
1351년 즉위한 공민왕은 원의 세력이 약해진 튙을 타 반원 자주 정책을 펼쳤다. 그는 쌍성총관부를 되찾고 친원 세력을 제거하였으며, 신돈을 등용해 권문세족을 억누르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고려 출신 공녀였던 기황후가 원 혜종의 총애를 받아 1340년 제2황후에 책봉되었고, 뒤에 정궁 황후에 올랐다. 이를 배경으로 그의 친족인 기철 등 친원 세력이 고려에서 큰 권세를 누렸다.
1388년 요동 정벌에 나섬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개경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정변으로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조선 건국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1392년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웠다. 이듬해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조선 건국 직후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1398년과 1400년 두 차례에 걸쳐 왕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이방원은 이 왕자의 난을 통해 정도전 등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1400년 이방원이 조선의 제3대 왕 태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사병을 없애고 6조 직계제와 호패법을 실시하였으며, 외척을 억눌러 왕권을 크게 강화하였다.
세종의 명으로 장영실과 이천 등이 제작한 혼천의 등 천문 관측기구가 완성되며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 관측 체계가 발전했다.
1446년 세종이 백성을 위해 만든 문자인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이 문자는 오늘날 한글의 바탕이 되었다.
세종대에 발전한 화포 제작 기술과 화약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이 편찬되며 조선의 화약 무기 체계가 정비되었다.
1453년 수양대군이 정변을 일으켜 김종서·황보인 등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를 계유정난이라 하며, 수양대군은 뒷날 세조로 즉위하였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조선의 제7대 왕 세조로 즉위하였다. 그는 6조 직계제를 되살리고 집현전을 없애는 등 왕권 강화에 힘썼다.
세조에게 왕위를 넘긴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뒤 사사되었다.
1469년 성종이 조선의 제9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사림을 등용해 훈구 세력을 견제하였고,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조선의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1494년 연산군이 조선의 제10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사림과 훈구 세력을 억눌렀으나, 폭정을 일삼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1504년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폐위 사건을 구실로 대규모 숙청을 벌였다. 이 갑자사화로 폐위에 관련된 훈구 세력과 사림이 크게 화를 입었다.
1506년 박원종·성희안 등이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을 몰아내고 그의 이복동생을 왕으로 세웠다. 이 중종반정으로 중종이 즉위하였다.
1519년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던 조광조 등 사림 세력이 훈구 대신들의 반발로 제거되었다. 이 기묘사화로 조광조는 사약을 받고 사림은 큰 타격을 입었다.
1545년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의 제13대 왕에 즉위하였다.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고, 외척인 윤원형 일파가 권력을 잡아 정치가 혼란하였다.
1545년 왕실 외척인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의 권력 다툼 끝에 소윤이 대윤을 몰아냈다. 이 을사사화로 대윤에 가담한 사림이 큰 화를 입었다.
1592년 일본이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초기에 한양과 평양이 함락되었으나, 이순신의 수군과 각지의 의병, 명의 지원군이 활약하여 1598년 일본군을 물리쳤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2척의 배로 울돌목의 좁은 물목에서 일본 대함대를 크게 무찔렀다. 이 명량 해전의 승리로 조선은 다시 제해권을 되찾았다.
1608년 광해군이 조선의 제15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며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1623년 김류·이귀 등 서인 세력이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세웠다. 이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였고, 이후 조선은 친명배금 정책을 폈다.
1636년 청이 조선을 침입하여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맞섰으나 포위 끝에 이듬해 삼전도에서 항복하였고, 수많은 백성이 청에 포로로 끌려갔다.
청에서 귀국한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사인을 둘러싼 여러 해석이 남았다.
1680년 남인 세력이 대거 쫓겨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았다. 이를 경신환국이라 하며, 숙종 대에 되풀이된 환국 정치의 시작이 되었다.
1689년 숙종이 장희빈이 낳은 아들을 세자로 삼는 데 반대한 서인을 몰아내고 남인에게 정권을 넘겼다. 이 기사환국으로 송시열 등 서인이 화를 입고 인현왕후가 폐위되었다.
1724년 영조가 조선의 제21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붕당 간의 다툼을 누르기 위해 탕평책을 펴고, 백성의 부담을 덜기 위해 균역법을 실시하였다.
1762년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임오화변은 노론과 세자의 갈등, 부자 사이의 대립이 얽혀 벌어진 비극이었다.
1776년 정조가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규장각을 두어 인재를 기르고 탕평책을 이어 갔으며, 수원 화성을 쌓는 등 개혁 정치를 펼쳤다.
1801년 벽파 세력이 천주교를 탄압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박해를 벌였다. 이 신유박해로 이승훈·정약종 등 많은 천주교도와 남인 시파가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1827년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그는 세도 정치를 억누르고 왕권을 회복하려 하였으나, 3년여 만에 세상을 떠나 개혁은 좌절되었다.
1871년 미국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를 침입하여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이 광성보에서 맞서 싸웠고, 미군이 물러간 뒤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강화하였다.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이 부패한 관리의 수탈과 외세의 침략에 맞서 봉기하였다. 이 동학 농민 운동은 반봉건·반외세를 내세운 대규모 농민 항쟁으로, 근대 개혁과 항일 투쟁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94년부터 조선 정부가 추진한 근대적 개혁이다. 신분제와 노비제를 없애고 과거제를 폐지하였으며, 조혼 금지와 과부의 재가 허용 등 여러 제도를 바꾸어 사회 전반을 근대적으로 고쳤다.
1895년 일본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다. 이 을미사변은 일본의 간섭에 맞서던 왕실을 넘보려는 만행으로, 이후 항일 의병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1897년 고종이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쳐 황제 즉위와 함께 자주 독립국임을 안팎에 선포하였다. 대한제국은 광무개혁을 통해 근대 국가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1905년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었다. 이로써 통감부가 설치되어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1910년 일본이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맺어 대한제국의 국권을 완전히 빼앗았다. 이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이후 조선 총독부가 설치되어 일제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들이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 3·1 운동은 남녀노소가 참여한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 부대가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거둔 대표적인 승리로, 이후 무장 독립 투쟁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
1920년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의 부대 등 독립군 연합 부대가 만주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싸워 크게 승리하였다. 이 청산리 대첩은 항일 무장 투쟁 사상 가장 큰 승리로 꼽힌다.
1926년 순종의 장례일인 6월 10일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 6·10 만세 운동은 침체되어 있던 민족 운동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1929년 광주에서 한·일 학생 간의 충돌을 계기로 학생들이 일제의 차별과 지배에 맞서 일어났다. 이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32년 한인 애국단 소속 이봉창이 도쿄에서 일본 국왕의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비록 실패하였으나 이 의거는 침체된 독립운동에 자극을 주었다.
1932년 한인 애국단 소속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의 전승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의 주요 인사들을 처단하였다. 이 의거는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8년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을 만들어 인력과 물자를 전쟁에 총동원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의 청년들이 강제로 징용·징병되고 여성들이 끌려가는 등 수많은 사람이 전쟁에 동원되었다.
1940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충칭에서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였다. 광복군은 지청천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연합군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
1943년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인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가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두 사람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혔고, 광복을 앞둔 1945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우리 민족은 35년간의 일제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나뉘게 되었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다. 이 제주 4·3 사건은 오랜 기간에 걸쳐 큰 인명 피해를 남겼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침하면서 6·25 전쟁이 일어났다. 국군과 유엔군, 중국군까지 참전한 이 전쟁은 1953년 정전 협정으로 멈추었으나, 국토는 폐허가 되고 분단이 굳어졌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천 상륙 작전이 펼쳐졌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전세를 뒤집고 서울을 되찾았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남북 분단 체제가 지속되었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맞서 학생과 시민들이 이승만 정부의 독재와 부정에 항거하여 일어났다. 이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고 자유당 정권이 무너졌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이 5·16 군사정변으로 군사 정부가 세워졌고, 박정희는 이후 대통령이 되어 오랫동안 집권하였다.
대한민국이 1964년부터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했다.
북파 공작 임무를 위해 창설된 684부대원들이 실미도를 탈출하며 발생한 사건이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조치를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유신 헌법을 제정하였다. 이 10월 유신으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한 독재 체제가 세워졌다.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 부마 민주 항쟁은 유신 정권을 크게 흔들었으며, 곧이어 10·26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였다. 이 10·26 사건으로 18년에 걸친 박정희 정권과 유신 체제가 막을 내렸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군을 동원해 계엄 사령관을 체포하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신군부가 실권을 잡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와 독재에 맞서 시민과 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어났다. 계엄군의 무력 진압으로 많은 시민이 희생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후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1981년 신군부 정권이 부산에서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등을 용공 혐의로 조작하여 구속한 사건이다. 이 부림 사건은 신군부의 대표적인 인권 탄압 사례로 꼽힌다.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일행을 겨냥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경기 화성 일대에서 장기간 이어진 연쇄살인 사건으로, 훗날 유전자 감정을 통해 범인이 특정되었다.
1987년 6월 박종철 고문치사와 4·13 호헌 조치 등에 분노한 시민과 학생들이 전국에서 독재 타도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일어났다. 이 6월 민주 항쟁의 결과 6·29 선언이 발표되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1988년 9월 서울에서 제24회 하계 올림픽이 열렸다. 냉전으로 반쪽이 되었던 이전 대회와 달리 동서 진영이 함께 참가한 이 대회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가 조직폭력과 민생범죄 척결을 내세우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소말리아 내전 당시 대한민국과 북한 외교관들이 모가디슈를 함께 탈출했다.
1993년 군인 출신이 아닌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문민정부가 출범하였다. 문민정부는 금융 실명제와 지방 자치제를 실시하고 군사 정권의 잔재를 청산하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1997년 기업들이 잇달아 무너지고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면서 대한민국은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이에 정부는 국제 통화 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였고, 이후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이루어졌다.
2002년 5월부터 6월까지 대한민국과 일본이 함께 제17회 FIFA 월드컵을 개최하였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이 대회에서 한국은 4강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고, 온 국민이 거리 응원으로 하나가 되었다.
2016년 국정 농단 사건이 드러나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에서 평화적인 집회를 이어 갔다. 이 촛불 집회는 이듬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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